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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이라는 은밀한 금기어
‘간통’이라는 은밀한 금기어
  • 관리자
  • 승인 2012.09.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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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저자 33년간 간통 담당형사로 활동한 구무모씨
정의로움에 불타던 성실한 한 경찰이 조사계로 발령이 나면서 ‘간통’과 처음 연을 맺게(?) 된다. 그 후 이 경찰은 33년 동안 무려 3천여 건의 간통 사건을 해결하고, 불륜 사건 전담 형사로서 표창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간기남’의 모티브가 된 원작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저자이자 영화 속 간통 전문 형사 강선우(박희순 분)의 모델이 된 구무모씨의 이야기다.

‘간통’이라는 은밀한 금기어

지난 1996년 12월, 구무모씨가 저술한 책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표지는 ‘간통’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도드라지고 선명하다. 번쩍번쩍한 은박에 요철까지 입혀놓은 것이 시선을 사로잡다 못해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들 정도의 포스다. 아무리 16년 전에 발간된 책이라지만, 그래서 한물간 표지 디자인이 촌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지만 간통이라는 수위 높은 금기어만을 너무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표지만 보자면 영락없이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은 3류 치정 소설 같기 때문이다. 강산이 두 번쯤 바뀔 만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말이다.

“처음에 책이 나왔을 때 욕 많이 먹었어요. 제목이 워낙 선정적인데다가 ‘간통’이라는 두 글자만 크게 박아놨으니 말이에요(웃음). 어떤 사람이 썼는지,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 없이 그저 간통이란 글씨에만 힘을 줬으니…. 더구나 출판사 쪽에서 홍보 목적으로 좀 논란을 일으켜보자는 식으로 더더욱 그렇게 몰고 갔거든요. 간통이라는 단어 덕분에 신문이나 잡지에 꽤 기사화돼서 공짜 광고가 되기는 했죠. 제목만 보고서는 사람들이 이상한 얘기들이 잔뜩 들어 있는 삼류 소설처럼 생각하더라고요. 그런 책이 아닌데 말이에요(웃음).”

최근 개봉되어 화제가 된 박희순·박시연 주연의 영화 ‘간기남’의 원작자인 전직 경찰 구무모씨(64)는 당시를 회상하며 환하게 웃는다. 영화의 원작이 됐다고 하니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가 쓴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는 사회인문 에세이에 가깝다. 소설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이 영화 개봉과 함께 16년 만에 다시 재발간됐다. 한결 산뜻해진 표지 디자인은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자신의 책이 영화화된다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한참 동안 잊혔던 책이 다시 재발간된다는 것도 저자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박철·옥소리 부부 사건을 마지막으로 간통죄는 서서히 사문화되고 있는 법입니다. 저는 간통죄를 처리하는 조사계 형사로서 책을 썼는데 그 당시부터 간통죄 폐지를 꾸준하게 주장해왔어요. 간통죄는 얼마 있지 않아 곧 폐지가 될 겁니다.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이 재발간됐다는 것이 저로서는 참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간통죄 폐지에 저도 작지만 한몫을 한 것 같거든요. 영화로까지 제작이 됐으니 영광이라면 영광이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직도 간통이 핫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보니 간통 자체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웃음).”

책에는 간통 전담 형사로서 겪었던 고충이나 천태만상 불륜 커플들의 사례들, 그리고 간통죄가 갖는 허와 실 등이 현장감 있게 담겨 있다. 크고 작은 간통 사건들을 담당 형사의 시각에서 써내려갔기 때문에 간통죄에 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간통 사건은 내 운명?

경찰이었던 구무모씨가 처음부터 간통 사건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순박한 순경 시절이 있었다. 월남에 파병됐다가 돌아온 후 순경 공채로 경찰이 되어 그가 처음 부임한 곳은 충청남도 금산경찰서 관내의 한 조용한 농촌 지서였다. 인삼의 고장인 그곳에서 산비탈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인삼밭을 돌며 인삼 도둑도 잡으며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도시의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로 발령이 난 것이다.

“경찰서에 가면 조사계와 형사계가 있잖아요. 형사계는 보통 살인이나 강도 등 강력 범죄를 다루고, 조사계는 고소·고발 사건을 전담하거든요. 간통죄는 배우자의 고소로 성립하는 친고죄라서 조사계 소관이고요. 사실 간통 전문 형사라는 말은 그저 사람들이 만든 말이지 그런 직함은 따로 없어요. 조사계 경찰의 업무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간통 사건은 조사부터가 험난하기 짝이 없어 경찰서 안은 종종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였다. 간통죄로 연행돼온 두 남녀뿐 아니라 각자의 배우자와 시댁, 친정 식구들까지 총출동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조사에 쓸 내용이나 경위를 넘어 불륜을 저지른 남녀의 사연과 각자의 집안 사정 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인간적인 연민과 경찰로서의 원칙 사이에서 수많은 번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사건을 진행하고 법을 집행하면서 간통죄라는 것이 여자에게 일방적일 정도로 불리한 법임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간통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날로 커져갔다.

“조사계 계장으로 승진하고 자리를 옮겼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가 간통죄로 연행돼온 피의자들이 대기하는 곳 바로 옆이었어요.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담당자는 자기 사건만 알지만, 저는 경찰서의 모든 간통죄를 다 알게 되는 거예요.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앉는 순간 ‘아! 진짜 책을 쓰라는 신의 계시구나’라고 느꼈다고 할까요?(웃음)”

그가 책을 쓰기로 한 이유 중에는 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편견을 조금 바꿔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간통죄라는 법이 갖는 허와 실도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낱낱이 밝혀보고 싶었다. 그의 뜻을 이해한 많은 동료와 선후배 경찰들은 자료를 찾아주거나 경험을 나누며 한 권의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도 있는 간통죄 폐지를 찬성하는 의견까지 피력하며 간통죄의 부당함을 알렸다. 현직 경찰의 행보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간통죄는 일제강점기 때의 형법이 그대로 전해져서 1953년에 제정된 법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이 법을 만든 일본은 1947년에 폐지했어요. 간통죄는 남자들이 만든 법이라서 오로지 성교시 삽입 여부만으로 간통죄 유무를 결정할 수 있어요. 간통 그 자체가 갖는 도덕적인 책임은 저도 통감하지만 애정관계는 문제 삼지 않다가 성교 행위 순간부터 국가 권력이 개입해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무리가 있죠.”

‘끝난 결혼’이 불륜을 낳는다

불륜이라는 소재만큼 솔깃한 귀동냥이 또 있을까? 게다가 상대는 3천여 건의 불륜 사건을 처리한 현직 경찰 출신 아닌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배우자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지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둥이 남자나 꼬리 치는 여자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상상하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소위 ‘꽃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런 경우는 조사계가 아닌 형사계 소관의 사건이기 쉽죠(웃음). 간통죄로 경찰서에 연행돼온 사람들을 보면 이미 깨질 대로 깨진 결혼생활을 이어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소수의 일탈이나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케이스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지극히 사생활에 관한 문제로 경찰서까지 가게 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퍼포먼스에 가깝게 느껴지는 간통죄 고소 사건을 대하는 당사자들의 태도는 의외로 다양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경찰서에 들어와 고소한 배우자에게 보란 듯이 애정행각을 벌이며 “형을 살고 난 다음 잘 살자”라며 다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 ‘나 죽었소!’ 하고 읍소형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사람도 있으며, 적반하장 격으로 맞서며 극한 대립을 보이는 부부들까지, 상상했던 것보다는 그렇게 창피해하거나 망신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귀띔이다.

“남자와 여자는 간통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요. 아내가 외도를 했을 경우, 남편을 보면 마음을 주고받은 사랑 유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섹스를 했는가, 안 했는가에 집착하죠. 반대로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을 경우, 아내는 섹스 유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사랑 유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추궁해요.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과거와 현재의 불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전에는 불륜조차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들은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극형에 처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는 것. 그러나 요즘은 불륜에 있어 남녀평등(?)을 이룬 것 같다는 것이 구무모씨의 평가다. 가해자와 피해자 없이 대등하고 동등한 자세를 보인다는 것.

또 불륜이란 주제가 남자로부터 여자로 옮겨갔다는 점도 크게 달라진 풍토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는 “건강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면 간통이나 불륜은 딴 세상의 일로 치부해버려도 좋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불륜이 결혼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끝난 결혼’이 불륜을 낳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어떤 불륜도 애정 있는 결혼을 해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장에서 확인한 진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직 불륜 전담 형사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허구한 날 부정한 배우자들만 상대하다 보면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시달려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제 아내는 아직도 제가 팔베개를 해주지 않으면 잠을 못 잡니다(웃음). 평생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 남편을 뒷바라지해온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그저 고맙고 또 고맙죠. 그리고 간통 사건 담당자가 뭣 때문에 불륜이나 간통에 혹하겠어요. 그로 인해 만날 울고불고 싸우는 사람들만 보는데요.”

1999년 제1회 남녀평등경찰상을 수상했던 그는 은퇴 후 매맞는 여성들을 위해 가정폭력상담소의 운영과 교육에 참여하며 가정폭력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현재는 밭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지혜를 담은 책 「밭을 매는 남자」를 집필하며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전직 불륜 전담 형사 구무모씨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때 그 간통 사건

남편에 의해 경찰서 조사계까지 질질 끌려오다시피 한 부인은 경찰서가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다른 부서 직원들이 일을 할 수 없다며 불평할 정도였다. 그때 조사계 사무실로 앳된 청년이 들어섰다. 그러자 부인은 꽁지 빠진 닭처럼 기겁을 하며 담당 형사의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청년은 며칠 후 군에 입대하는 부인의 아들이었다. 평소 의처증과 구타가 심했던 남편이 며칠 전부터 간통 증거를 잡았다며 부인을 때리다가 급기야 아들이 이를 제지하니 아들에게까지 손찌검을 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엄마의 부정을 안 믿는 눈치인 아들이 괘씸해 형사 앞에서 엄마의 자백을 직접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체면을 세우겠다는 욕심에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보다 못한 형사들이 남편을 나무라기 시작했고 경찰서 안은 입씨름으로 시끄러워졌다. 그 틈을 타 아들이 엄마가 숨어 있는 책상 밑으로 다가갔고 부인은 아들의 품에서 숨죽여 오열했다. 그 아들은 심하게 떠는 엄마의 등을 어루만지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엄마, 난 엄마 이해해.”

교수 부인이 고소당한 사건이었다. 남편이 교환 교수로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혼자 지내게 된 부인이 남편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가 단골 카센터 정비공과 정분이 난 것이다. 카센터 정비공은 교수 부인보다 한참 어린 청년이었는데 교수 부인은 아예 방까지 얻어주고 밥도 해 먹으며 수시로 드나들다 시동생에게 꼬리가 잡혔다. 시동생이 정황 증거들을 모아놓고 외국에 나가 있는 형을 불러들여 고소를 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서에 온 교수 부인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드나든 것은 맞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동생이 모아온 증거들도 섹스 유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애정관계의 정황 증거뿐이었다. 섹스를 했느니, 하지 않았느니 공방이 치열하게 오가다 “오럴만 했다”는 교수 부인의 자백까지는 받아냈으나 ‘섹스를 한’ 증거는 없기 때문에 부인은 무죄로 풀려났다.

수원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남편과 부평에서 식당을 하는 아내는 법적으로만 부부일 뿐 사실상 남남과 다름없는 긴 별거 중이었다. 이미 정을 통하는 애인이 있었으면서도 남편은 가끔 아내를 찾아와 감시 아닌 감시를 하고는 했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던 아내는 처음으로 탁구 코치 선생님과 사귀게 됐는데 이 사실을 안 남편이 두 사람의 섹스 현장을 덮쳐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한 것이다. 아내는 매우 수치스러워했으며 남편에게 엄청난 분노를 드러냈다. 사실상 이혼한 부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남편의 악의적인 목적이 보여 불구속으로 귀가 조치시켰는데 부인은 경찰서를 나가 곧바로 인근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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