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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6급 주사?" 사법연수원 발칵
"변호사가 6급 주사?" 사법연수원 발칵
  • 슈피겔
  • 승인 2012.02.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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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6급 주사?" 사법연수원 발칵

[중앙일보] 입력 2012.02.25 01:10 / 수정 2012.02.25 17:08

권익위, 일반직 3명 첫 채용
연수원생들 “공개적 모욕”
로펌 월급 500만원 관례 깨지고
기업에 일반사원·대리 입사도

올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처음 진출한 변호사 자격 소지자 세 명이 사상 처음으로 6급 주무관(옛 주사)으로 채용됐다. 그동안 공무원 채용 때 사시 출신 변호사들은 5급 사무관 이상의 대우를 받았던 데서 직급이 낮아진 것이다.

이는 행정고시(5급)보다 아래 직급이고 사법연수원생 신분(5급 대우)보다 낮은 것이어서 법조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연수원 수료 후 판사, 검사로 임용되면 각각 3급, 4급 대우를 받는다.

 국가권익위원회(권익위·위원장 김영란)는 지난 3일 ‘일반직 행정 6급 5명 채용 공고’를 냈다. 지원 자격은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로 명시했다. 시험에는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 7명이 응시했다. 권익위는 이 중 3명을 채용했는데 모두 이번에 연수원을 졸업한 41기생이었다고 24일 밝혔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사법연수원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재학 중인 42, 43기 자치회 회장과 조순열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담당 부회장 등 20여 명은 지난 8일 권익위를 찾아가 “연수원 출신을 행시 출신 사무관 아래에 두는 것은 공개적 모욕”이라고 항의했다. 5급 특채가 불가능하다면 6급 정규직 대신 5급 대우 계약직으로 채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연수원생들은 또 자치광장 홈페이지에 “공무원 6급 이하로는 절대 응시하지 맙시다”는 공지까지 올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2000년 이후 변호사 수가 꾸준히 증가해온 데다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법률시장이 변호사 과포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불가피한 현상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공무원 채용뿐 아니라 기업 채용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SK그룹은 몇 년 전부터 사내 변호사를 선발할 때 대리 3년 차 대우로 선발한다. SK 관계자는 “2008년 이전에는 연수원 출신 변호사를 과장급으로 채용했지만 최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대리급으로 뽑아도 경쟁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직 과장급으로 대우하는 의류업체 ‘이랜드’가 사내 변호사(3명) 모집공고를 내자 170명이 지원했다. 이랜드 인사팀 관계자는 “로스쿨생 6개월 인턴과정도 7명을 모집하는데 230명이 지원했다”며 “과거와 달리 기업에 입사하려는 연수생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변호사들은 상무·부장 등의 대우를 받으며 일반 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점차 과장급으로 대우가 낮아졌고, 최근에는 대리나 일반 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늘어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군법무관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방부는 매년 20명의 장기 군법무관을 모집하지만 그동안 지원자 수가 많지 않았다. 2010년에는 1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71명(남자 39명, 여자 32명)이 지원해 3.5대 1의 경쟁률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로펌에 입사하는 연수원생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왔던 월 500만원의 급여 조건도 깨지고 있다. 손정윤(45) 연수원 42기 자치회장은 “3년 전만 해도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은 750만원 혹은 그 이상의 월급을 보장했고, 소형 로펌도 500만원 이상 줬다. 그런데 최근에는 500만원대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성적이 낮은 연수생들은 400만원을 받아도 일단 취업하려는 추세”라며 “변호사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채윤경·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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