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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라탄광 대명사 신홍식 회장님
영원한 청라탄광 대명사 신홍식 회장님
  • 양창용
  • 승인 2023.10.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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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보령시경우회장 신홍식 회장님 다양한 업적 지금도 남아있어 후세들에게 잔잔한 감동
이춘우 보령시경우회장

 신홍식(申弘湜)씨는 1965년 6월 대천읍 대천리에 월산탄광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본사를 두고, 청고을 나원리 다리티(月峙)에 광업소를 세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지역 토착 인으로서의 광산 경영인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신홍식(1930~1999)은 청라면 장현리에서 출생을 하였고, 대전공전과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광산업에 뛰어들었다. 장현리에는 고려개국공신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평산신씨의 집성촌으로, 18세기 후반 경주이씨와의 통혼을 계기로 이주해 온 28세 신광태(1756~1788)가 청고을 입향조이다. 신홍식은 입향조에서 7대에 해당된다.

다리티에서 광산을 시작 할 때, 선대로 물려 받은 자산을 모두 투자하고, 심지어 친인척의 돈까지 끌어댔지만 광맥은 터지지 않고 광부들의 임금마져 주지를 못하여 읍내의 허름한 셋방을 얻어 주야로 술에 빠져 실의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광부들의 임금 독촉에 광산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읍내에서 숨어 지내다시피 하던 어느날 늦은밤, 밀린 임금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며 몇 일만 더 굴진을 해보자던 광부들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탄맥이 터졌다고 그 당시 몇 차례 다니지 않던 버스까지 끊어진 30여 리를 달려와 보고를 한 것이다.

신홍식은 그렇게해서 1973년 월산탄광은 당시 연간 2.4만톤의 무연탄 생산능력을 갖추었고, 총자산 2억, 매출액 1.2억원 실적을 올리며 광산업으로 성공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1980년 야심차게 신성산업개발을 인수하고 보령지역 광산업계에서 이필용씨와 함께 보령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두를 서게되며 대한석탄공사와의 조광권 계약으로 1990년 까지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는 일취월장하는 사업과 더불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민주자유당 대천시보령군 지구당 위원장,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남지부장, 럭비풋볼연맹 회장, 자유총연맹 도지부장 등의 정치권에도 발을 들여 놓았으며, 합동연탄 대표, 충남도시가스 사장, 서오개발 회장, 대천 동보상호신용금고 대주주 등의 사업체 대표도 역임하였다.

 한편 이춘우 보령시경우회장은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고·신홍식 서오개발주식회장의 묘역을 참배하고 회원들과 함께 벌초 행사를 해마다 하여 후배경찰관들에게 의리 있고 할 말 하는 모범경찰 선배님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춘우 보령시경우회장은 고 신홍식 회장님은 보령 경찰발전과 큰 사랑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후배경찰관들의 단합과 화합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보령시 경우회원들은 보령시 발전에 최선을 다할 것을 천명했다.

이춘우 회장은 대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경찰에 입문해 33년간의 경찰 생활을 마쳤다.

퇴직 후 동양골프연습장 운영, 충남공동모금회 운영위원, 명천사회복지관 운영위원, 사회복지법인 보령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동아인재대학교, 호원대학교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역사회 발전에도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인물로 보령시민들에게 몸소 실천하는 친절 봉사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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