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느덧 내년이면 대천청년회의소(대천JCI 회장 김보균)가 보령에 뿌리를 내린지 반백 년이 되는 영광의 창립50주년이 되는 역사적이며 뜻 깊은 해이다.
1994년도 발행된 대천시지(大川市誌) 기록에 따르면 “대천청년회의소(JC)의 연혁으로는 1974년 4월 8일(4월21일) 회원 46명을 창립총회를 걸쳐 1974년 7월28일 한국JC 제32년차 임시총회에서 인준되고 “설립이념과 목적”으로는 한국청년회의소의 일원으로서, 국제청년회의소의 신조를 받들어 민주 시민으로서의 훈련을 통하여 청년들의 지도 역량을 개발하고 그 총력을 집결하여 지역사회를 개발하며, 국제간의 이해와 우의를 증진시켜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함에 있다.”라고 되어 있으며,
또한 1994년 12월 30일자로 제21대 박상신 회장(편집인 이원빈,구자홍)명으로 발행된 “한내돌다리(대천JC20년사)” 기록에 의하면 초대 2대 회장에 故신홍식 회장과 이시우(전 보령시장) 사무국장의 각고의 노력으로 초석을 다지며 제4대 故전용설(전 도의원) 회장 재임시인 1977년 4월21일 “창립3주년 기념식 및 제1회 만세보령대상 제정 시상식”을 대천극장에서 개최함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만세보령대상시상식이 태동허게된다. 아울러 창립10주년이 되는 1984년 5월12일 제11대 故박갑순 회장 재임시 “제8회 만세보령대상 시상식 및 보령시에 최초로 만세보령(萬世保寧)탑”비가 21번 국도 대천의 관문 갈머리 고갯길에 세워져 39년의 역사와 함께 우리곁에 숨쉬고 있으며 만세보령(萬世保寧)의 애향정신(愛鄕精神)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만세보령(萬世保寧)의 용어는 보령시의 상징으로 되어 있으며 “2018년 01월 02일 보령시장신문”에 상세히 기록 되어 있고, 옛 통일신라시대 풍수의 원조 도선국사의 성주산 전설과 고려말 왜구를 지켜낸 도만호 김성우장군의 만세보령 설과 토정 이지함 선생 설, 진충보국 만세보령 임진왜란의 안대진 선생 설등이 전해지며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의 가야산 자락의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와 오서산자락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之)에 등장하며 공식 기록으로는 1971년 이돈구 군수가 발행한 보령군지의 서문에 “만세의보령(萬歲의保寧)”이 쓰여있고, 1977년 대천청년회의소의 만세보령대상 제정과 함께 1984년 만세보령탑비와 1987년에는 대천문화원의 애향(愛鄕)지와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김학현(金鶴顯)군수의 주창으로 탄생된 제1회 만세보령문화제 개최와 함께 2013년 보령군지(保寧郡誌)에 만세지보령(萬世之保寧)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며 4-H활동 후원으로 보령군농촌지도소(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만세보령 농업대학등 곳곳에서 만세보령(萬世保寧)의 단어가 쓰이게 된다.
만세보령의 뜻 : 보령지역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오서산과 성주산의 수려함 사이로 넓은 평야와 탁 트인 서해바다를 중심으로 사람과 산, 들, 바다가 조화롭고 물산이 풍부한 명승지로 자손만대 영영세세토록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축복의 땅(萬代榮華之地)의 고장이라 하여 만세보령(萬世保寧)이라 일컬어 오고 있다.
<만세보령의 정의>
만세보령(萬世保寧)은 ‘영원토록 평안함이 지속된다(오래도록 살기 좋은 고장)’
출처 : 보령시장신문(http://www.brcity.kr)
근래 보령지방의 역사속에 대천청년회의소의 탄생과 창립 50주년에 즈음하여 보령의 지방사 속에 “본래의 지방사” 연구란 지표면상의 일정 공간을 토대로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 왔던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모든 유·무형의 자취들, 즉 문화를 종합적으로 분석, 고찰하여 그 공간을 보다 나은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지방적인 특수성을 연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보편적인 역사적 의의를 발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겉보기에 똑같은 사례연구라도 그 목적이 국가사의 일반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그 지방 자체의 지방성을 밝히기 위한 연구냐에 따라 각각 “지방화된 전국사”와 “본래의 지방사”로 구분된다. 말하자면 “사례연구로서의 지방사”와 “전체로서의 지방사”로 구분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본래의 지방사”라고 해서 국가사와 전혀 무관한 연구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지방사는 지방의 독자성을 기초로 하되 국가의 전체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즉 자기 충족적인 입장에서 독자성을 최대로 살리되, 전체 국가사의 기초로서의 의미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라고 불리는 심리학의 유명한 이론으로 배가 닻을 내리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초기에 제시되는 것이 일종의 선입관으로 작용해 판단에 영향을 주는 효과. 처음에 작업이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보다가 조금 느리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실제 속도보다 더 느려 보이거나 느린 작업을 보다가 조금 빠른 작업을 보면 실제보다 더 빨라 보이는 것 따위가 그 예이다.
우리 보령에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찬 청년”이란 슬로건의 대천청년회의소가 창립 50주년이 다가오며 그 애향(愛鄕) 정신의 진리(眞理)인 보령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眞理)는 대중의 생각과 믿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하고 동일한 방향성과 역사의 기록에 좋은 가치에 있을 것이다.
그동안 오직 숭고한 보령사랑의 역사를 만들어 왔듯이 2023년 “건강한 도시 행복한 보령”의 완성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 처럼 대천청년회의소(대천JCI)의 역사가 JCI 창시자 헨리 기젠비어의 “훌륭한 인격과 시민정신이 깃든 이 조직속에서 언젠가는 위대한 사회가 이룩되리라 믿는다.”란 말 처럼 위대한 보령사회 “대한민국 행복도시 세계속의 만세보령(萬世保寧)”을 다시한번 기원한다.
한편, 한국JC는 1951년 "전쟁으로 폐허된 조국을 JC운동으로 재건하자"는 12명의 청년들이 모여 1952년 2월 4일 "평택청년애향사업회"를 창립하고 동년 6월 국제청년회의소(JCI)에 지방JC 가입했다. 이후 1954년 3월 19일 국제청년회의소(JCI)에 국가단위 조직으로 정식 인준되었으며, 1964년 4월 18일 외무부에서 사회단체로 등록, 1974년 4월 9일에는 사단법인체로 등록되었다.
참고 문헌 : 보령군지, 대천시지, 한내돌다리(대천JC20年史), 대천JC창립 제35주년기념지 외
고려충신 김성우장군 추모 사적문(高麗忠信 金成雨將軍 追慕史蹟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