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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재발견2, 논문으로 다시 찾은 영보정(永保亭) 연구 화제
보령의 재발견2, 논문으로 다시 찾은 영보정(永保亭) 연구 화제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20.11.12 18: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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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래 박사의 영보정(永保亭) 제영시(題詠詩) 논문 ‘문화재청’인기짱
김명래 박사

얼마전 국가문화재가 된 ‘태안 안흥진성’이 남해(南海) 수군에의 쏠림을 딛고, 서해(西海) 수군의 전방위 기능 조명등에 주목을 받으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60호로 승격에 따라 더불어 주목을 받는 문화재 지정 사적 제501호(2009.08.24 지정)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충청수영성내의 영보정(永保亭)이 다시 학계에 화제가 되고 있으며 여기에 보령의 소영문화연구소 소장 김명래 박사의 “음취헌 박은의 영후정자(營後亭子)시제(詩題)와 관련된 영보정 창건내력 검토”의 논문을 김명래 박사의 제공을 받아 지난 노승석 박사의 양명학(陽明學)의 선두주자 박심(朴鐔)선생의 수준 높은 논문에 이어 이번 김 박사의 논문을 기사로 쓰며 더욱 품격 있는 보령시 역사문화의 발전을 기대한다.

충남 보령의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 성내에 있던 영보정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하여 수많은 제영시의 창작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좁은 포구를 통해 밀려든 천수만(淺水灣)의 바다가 둥근 호수 모양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지세 때문에 영보정 일대는 산, 강, 호수, 바다의 모든 풍광을 한데 지닌 기이한 경관을 자랑하였다. 영보정의 명성은 조선 전기 朴誾의 제영시 덕분에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박은이 지은 영후정자(營後亭子) 다섯 수가 영보정 경관의 특징인 ``기이함``을 온전히 담아낸 전범(典範)으로 인식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박은 시의 뛰어남을 칭송하거나, 그 내용을 용사 또는 점화하는 영보정 제영시들이 다수창작되었다.

한편, 이안눌(李安訥)은 박은의 뒤를 이어 기이``奇異``를 특징으로 하는 영보정 제영시를 지었으나 난삽``難澁``에 빠지는 병폐를 보였고, 여타 시인들도 박은의 시가 지닌 개성적인 면모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진부한 용사(用事)나 관습적인 의경(意境)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박은 시의 기이함을 계승하면서도 이와 구별되는 미감까지 지향하려 했던 데서 주목할 만한 제영시들이 창작되었다. 치밀한 의경 속에 기상을 잘 담아낸 이춘영(이춘영)李春英의 시, 억양돈좌의 수법을 잘 활용한 정래교(鄭來僑)의 시, 당시(唐詩)의 풍격을 잘 직조해낸 양 경우(梁慶遇)의 시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런 내용이 보령 출신 김명래 박사의 논문으로 각종 학회지에 게재되면서 그동안 몇몇 향토연구가의 지엽적 향토사에서 탈피하여 학회지의 공인을 받음으로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저자의 동의하에 원문을 보령시장신문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앞으로 보령시장신문은 보령시의 문화의 품격을 더욱 높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리시의 삶의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해 매진할 계획입니다.

박은(朴誾)의 시(詩) 영후정자(營後亭子) 중에서

지여박박장비익 누사요요불계봉

북망운산욕하극 남래혜대차위웅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

北望雲山欲何極 南來襟帶此爲雄

땅은 새가 날개 치며 날아오르는 듯하고

누각은 흔들흔들 매인데 없는 배 같아라

북을 바라보매 운산은 어디가 끝인가

남으로 띠처럼 두른 산세 여기가 제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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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민 2020-11-12 18:59:30
날로 발전되는 보령시장신문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런 유익한 좋은 기사를 써주심이 고맙습니다.
보령시장신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