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보령 ‘희망(希望)’, 보령에 토정(土亭) 이지함 동상을 세우자!”
“만세보령 ‘희망(希望)’, 보령에 토정(土亭) 이지함 동상을 세우자!”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20.10.17 21:0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백년前 환황해권 중심시대 예측하며 동아시아 황금해안지대 예언 적중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의 강타로 경자년(庚子年) 한해 2020년도 2달을 남겨두고 보령시에도 많은 변화와 함께 5백년前 환황해권 중심시대를 예측하며 동아시아 황금해안지대를 예언하며 만세보령(萬世保寧)의 찬란한 영화와 산 ,들, 바다의 조화로운 발전으로 미래를 예견한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函)선생의 예언처럼 ‘보령-안면도 연륙교 개통’의 준비와 함께, 금번 보령시(시장 김동일)가 공모하여 이루어낸 ‘해상풍력단지’는 보령시와 한국중부발전㈜가 공동으로 참여해 약 6조원의 예산을 들여 외연도 북측, 황도 남측 해상 62.8㎢에 오는 2025년까지 1GW급 해상풍력 발전 설비를 갖출것이라 보도가 발표되자 때를 맞추어 보령의 역사인물 토정 이지함 선생을 기리는 동상을 세우자는 여론이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단장 임인식)에서 촉발되어 각 사회단체와 함께 분위기 조성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한번 주목할 만한 역사적 일은, 이미 동북아 중심의 환황해권 중심시대를 예견하고 미래형 신산업을 통해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령의 연안지역에 묘소를 쓰게 된 토정 이지함 선생을 알면 만세보령의 천운지기(天運地氣)는 추상적인 동경이 아닌 현실로 다가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토정 이지함(1517~1578)선생을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토정비결의 저자이고 패랭이와 삼베옷, 짚신을 신고 다니는 양반답지 않은 양반의 기인행각을 연상한다. 뭔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신비스런 인물로 각인되고 있는 게 토정 이지함선생에 대한 지금까지의 현실 인식이다. 토정이 조선전기 유교 성리학적 관점의 정치사회 지배 이념에 직접 간접적으로 도전하고 백성의 가난구제에 초점을 두고 시대를 뛰어넘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현실개혁론자였다 라고 하면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분들이 많다. 토정 이지함의 섬과 바다에 대한 공간인식을 주제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정 이지함은 자신이 살았던 시기를 나라의 존망이 달린 위기사태로 진단하고 지배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본업인 농업으로는 백성들의 가난구제가 불가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농업을 본업으로 하되 수산업과 광업등 이른바 말업으로 어려움에 빠진 본업인 농업을 보충하자는 절충안을 상소문을 통해 제시했다. 바다와 섬에 눈을 돌려 바다 섬의 강점을 살려 백성의 가난 구제를 하자는 구체적인 대안을 담은 토정의 획기적인 주장은 조선전기에서 후기까지 심지어 개혁론자로 일컬어지는 대유학자 이이에서 정약용에 이르도록 개혁성향을 지닌 성리학자들의 건의나 상소 등에서 찾아볼 수 없다. 토정 사후 200년이 지난 북학파에서 일부 학자들이 제기했을 뿐이다.

토정은 실용주의와 실천을 앞세운 경세사상가이자 사회복지 실천가이기도 했다. 특히 재야의 기인 토정과 제도권 관료 모범생 율곡과의 독특한 친분 관계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토정 이지함은 조선 성리학의 거목인 율곡 이이(1536~1584)보다 20여년 앞서 태어났고 비록 추구하는 학문의 길과 삶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는 두 사람의 생각과 교류관계는 비교적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토정 이지함이 생애 마지막 해인 1578년 아산 현감때 질병으로 숨지자 율곡 이이가 큰 별이 졌다며 슬퍼했으며 6년 뒤에 이조판서였던 율곡이 죽자 선조가 통곡했다는 내용이 있다.

토정 이지함은 50대 중반을 넘어 유일로 관료로 천거돼 두 차례 지낸 현감 시절 백성들의 가난과 고통 실상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담은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 중에 이번 주제발표와 관련돼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제, 직업제 사회에서 농사로는 (농본)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어려우니 말업(어염업, 광업)으로 보강하자는 내용이다. 이른바 바다와 섬의 강점을 활용해 백성의 어려움을 타개하자는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는 해금정책을 유지하면서 바다와 섬을 천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으나 토정은 구체적으로 전라도 만경현 앞의 양초도를 어업수산기지로 ,황해도 풍천현 앞의 섬인 초도정을 소금생산기지로 만들어 그 곳에서 생산된 물고기와 소금을 곡식으로 바꿔 백성을 구제하고 국가 재정에 보태자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토정 이지함은 야인시절 한 섬에 주민들과 박을 심어 그 박 수만개를 팔아 곡식으로 바꿔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등 자원으로서의 바다와 섬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배경으로 보령시가 추구하는 “건강한 도시, 행복한 보령”의 이미지와 보령을 중심으로 가장 큰 지리적 변화인, 내포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자족적인 균형을 표방한 충청남도 도청이 내포문화권의 중심이라는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원으로 자리를 잡고 둥지를 튼 내포신도시의 도청시대와 함께 환황해권 시대를 지향하며 500년 전 이 시대에 마포와 보령 일대에 거처를 두고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들어 팔며 ,보령 앞바다 섬에 들어가 박을 심어 가을에 수확하여 팔게 하고, 황해의 여러 섬과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며 스스로를 바다의 광민(狂民) 이라고 하면서, 물길과 항해술을 배우며 제주도와 중국 등, 먼 바다를 다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토정 이지함 선생의 동상 건립의 당위성이라 하겠다.

한편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은 희망(希望) 하면 토정 이지함 선생이 떠오르고 금년 7월 대천동에 자리한 토정 이지함 선생 생활관 “토정마루”의 탄생과 함께 화암서원 옆의 “토정비결 체험관” 건립을 앞두고 토정 이지함 선생의 고증자료와 문헌을 수집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의 후원으로 학술대회를 통해 만세보령의 희망 “토정 이지함선생의 동상 건립”에 많은 여론 수렴과 보령의 역사 인물로 제정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오은숙 2020-10-17 22:29:19
(토정)이지함 선생의 훈훈한 기사에 감동입니다.~
이웃 홍성군만가도 백야 김좌진 장군등 많은
역사인물을 다양하게 홍보하는데 우리 보령시도
이토정 지역 화폐등등 토정 이지함 선생 선양 사업에
적극 동참 합시다.
동상이 꼭 건립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박종경 2020-10-17 21:29:53
의견 좋습니다. 우리 고장 알리는 좋은 방법 중 하나 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