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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故김화식 독립운동가 훈장, 훈장증 유족품으로 돌아와
보령시, 故김화식 독립운동가 훈장, 훈장증 유족품으로 돌아와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20.08.16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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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충남서부보훈지청장’ 손자등 후손들에게 직접 전달

25년간 후손이 안밝혀져 보훈지청에 잠자고 있던 훈장과 훈장증이 아들등 유족과 문화단체의 각고의 노력으로 보령시 청소면 김우직(필규, 증손자)씨 등에게 이번 8.15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전수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故 김화식 독립운동가의 다른 이름은 우동(友東)으로 알려졌으며 1866년 음력 7월 3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서 태어나 1943년 음력 4월 2일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677번지 죽하 마을에서 별세하시니 향년 78세였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고 화서학파 유학자이며,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와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일(仲一), 호는 복암(復菴)이며 충남 보령시 청소면 독립유공자로 호좌의병진[ 湖左義兵陣]에 참여하였고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되었다.

또한 부인은 배천 조씨(白川 趙氏, 백천 조씨)이고 고향은 청라면과 가까운 청양군 화성면 광평리 너더리(넓은들) 마을이다. 후배위는 분성김씨(盆城)이다.

이렇듯 행적이 뚜렷함에도 독립운동에 가담을 하면서 당시 이명(異名 다른이름)을 사용 하였고 호적상에는 부친. 본인. 큰아들의 이름을 다르게 하여 의병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아 더 큰 화는 모면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령 경찰서에서 당시의 기록을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일제치하 당시의 모든 기록들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현재 보령경찰서는 1945년에 새로 지어져 이전 기록들은 없다 하였다.

이런 사정을, 먹고살기 어렵고 별 관심 없이 지내다가 아들3형제가 찾다가 못찾고 금번 증손자 김우직(필규)씨가 늦게 증조부의 소식을 알고 전국을 발로 뛰며 찾던중 보령문화재지킴이 임인식 봉사단장 만나 많은 자문과 도움으로 급진전을 맞아 이번 광복절을 맞아 전수받게 된 것이다.

후손 김우직(필규)씨는 조부님에 대한 기록을 찾고 전국을 헤매며 이명을(異名 다른이름) 썼다보니 밝혀지기가 어려웠는데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증조부님의 행적이 늦게 드러나고 훈장과 훈장증을 받고보니 정말 기쁘고 고향 보령에서 올바로 펼쳐지기를 바란다며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한편 이소식이 알려지자 김동일 보령시장등 관계자들은 축하 전화와 추후 학술 행사등을 통해 故김화식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올바로 평가 되어 보령시의 품격이 높아지고 “건강한 도시 행복한 보령”의 만세보령이 더욱 전국에 드러나기를 기대 한다고 말했다.

김우직(필규) 소개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677 죽하 마을 태생(증조부 김화식 생가)

청소초등학교. 청웅중(청소소재) 졸업

보령시 농어민 후계자(농업경영인) 청소면 총무.

청소면 자율방범대 활동.

보령시 농업기술센터 시설채소연구회 총무.

청소면 죽하 작목반 구성 시설채소 농업.

농협중앙회 새농민상 수상(청소농협)

보령시장상 수상

10여년전 홍성으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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