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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방역이 장기화하면서 가축의 살처분을 도맡아 하는 방역 공무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구제역 방역이 장기화하면서 가축의 살처분을 도맡아 하는 방역 공무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김동호
  • 승인 2011.01.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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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방역이 장기화하면서 가축의 살처분을 도맡아 하는 방역 공무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방역공무원 백혜련씨
6일 경기 파주시 구제역방역대책본부에서 만난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 가축방역팀의 백혜련(37·수의사·사진)씨는, 지난달 16일 파주지역에 투입된 뒤 22일째 여관에서 지내면서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구제역과 싸우고 있다. 초기에는 거의 매일 새벽 4~5시까지 밤샘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세밑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파주 살처분 농가 아들의 글’에 나오는 여성 방역관이다.
백씨 등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 가축방역관 30여명은 가축의 상태를 판단하고 소독에서 살처분·매몰까지 모든 과정을 지휘하는 경기 북부지역 구제역 현장 사령관들이다. 행정 공무원과 군인, 경찰, 소방대, 민간인 등 지원 인력에 대한 교육과, 예방 살처분에 반발하는 농민을 설득하고 매몰지를 선정하는 일이 모두 이들의 몫이다.
8살 아이를 둔 백씨는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젖먹이 송아지나 새끼돼지를 살처분할 때”라며 “이럴 때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오고,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경기도 연천에서 발생한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된 뒤엔 외상후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었다고 했다. 당시 살처분 한우농장이 우연히도 지지난해 브루셀라 감염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살처분했던 농가여서 후유증이 더 컸다고 말했다. 두번씩이나 같은 집 가축을 없앴다는 죄책감 때문에 사흘간 농가에 머물며 울면서 사죄했지만, 현장을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소·돼지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소·돼지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날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간사인 김영우 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최근 살처분 참여 공무원 21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1.1%가 정신적 스트레스, 악몽 등에 따른 수면장애를 겪는다고 했다.
방역관들은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업무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다. 소의 살처분은 근육이완제 2㎖를 주사기로 투여하는데, 보통 혈관주사는 5초, 근육주사는 1~2분쯤 지나면 숨질 만큼 치명적이다. 자칫 방심하면 한우의 발길질을 맞거나 뿔에 받히고, 주사기에 찔려 부상을 입기도 한다.
백씨는 “생명을 살려야 할 수의사가 생명을 없애는 일도 해야 하니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구제역 차단을 위해선 살처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축산농가들도 방역에 힘쓰는 등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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