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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호] 내가 겪은 89년도와 문익환 목사님
[05호] 내가 겪은 89년도와 문익환 목사님
  • 슈피겔
  • 승인 2009.03.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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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호] 내가 겪은 89년도와 문익환 목사님 | 슈피겔의 몸부림 2005.01.02. 11:30
http://paper.cyworld.com/spiegel/360607
문익환목사님_s.jpg



 
대학을 진학했던 89년도...
분명 시대가 평온하지마는  아닌 시기였다.
대학 들어가자 마자 고교선배의 강압으로 소위 운동권을 소개받고,
나름대로 한학기를 심취해 있었던 시기였다.
내 일생을 좌우할 여러가지 영향중 특히 냉철한 시각을 배우게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소위 386이라 불리는 여러 선배와 문익환목사님과 백기완선생과 노찻사와 안치환형의 노래들을 만났던~

대학 입학 일주일 뒤 운동권에 들어갔고, 채 한주만에 화염병 삼백개를 밤새서 만들었던 기억들~
선배들 따라 성능테스트 한답시고 대운동장 뒤켠에 있는 야외소극장에서 던져보고 벽에 부딪히는 순간 굉장한 위력을 보이는 그 병들을 보며 환호했건만... 다음날 이 병들이 전경들에게 날아가고, 그 불길에 날뛰는 그들을 보면서 전날 환호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설마 사람에게 직접 던져 맞힐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루탄과 사과탄을 연거푸 발사해댄건 말할것도 없고...

이것은 또다른 폭력이고 전쟁이 아닌가!

무엇이 젊은 전경과 학생들을 갈라놓았던가!

서로 득될건 하나 없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들을 쏘아대는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국 서로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상처만 남게 되는데...

공법학회와 전대협소속된 선배들로 부터 학습은 계속되었고,
난 하숙집에 밥한끼 먹으러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군대가기 전까지 동아리연합회장인 황식형과 동거를 하게 되면서, 그 형의 진솔되고 순수한 그리고 항상 고민하는 모습을 배우게 되었다.
자취방은 꽤 컸지만 벽은 온통 소위 불온서적(지금 세대는 잘 이해가 안될것 같아 부연하자면, 공산주의 이론이나 또는 그와 연관된 단어만 들어가도 금지서로 국가가 지정을 했고,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으로 꽉 차 있을 정도로 황식형의 연구는 굉장했다.
술을 마시고 와서도 한두시간은 책을 읽고서 잠드는, 어쩔땐 만취해서 들어와서 책을 펴논채 이내 엎드려 자는 모습도 종종 보였을 정도로...
그러나...모두가 황식형 같지는 않았다.
왜 운동권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노력도 않고 이유도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였고, 내가 던진 질문과 고민에 명쾌하게 해갈해 주는 선배가 없었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행동하는 선배들도 드물었다.
그저 술마시고 수업빠지고 농담따먹는 모습만을 보이다가도 전경들과의 대치만 벌어지면 눈에 불을 켜고 화염병을 던지고 민주와 통일을 외쳐대는...
난 실망을 했고, 떠나고 말았다.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쏟아낸 건 또 얼마나 자주이던지, 어쩔 땐 도서관까지 스며 들어오는 최루탄에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수업들어가려고 학교에 등교하면 경찰들이 문앞에서 검문을 해대는 통에 옥신각신하기도 여러번...  또, 수업중에 쓰러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강의도중 뛰쳐나가 전경들과 싸움을 벌이다 국어교수의 눈밖에 났다가, 선배들의 기말고사 거부결정에 강의실 출입이 봉쇄된 걸 보고 선문과 종대와 훌쩍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뒤늦게 국어시험만 치뤄져 받은 F학점... ㅋㅋ 생각해 보니 4학년때 늙은 선배가 일학년들 틈에 끼어 수업을 받을땐 화끈거렸지만... 그런대로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89년도 2학기...
그해 광복절에 판문점을 통해 두 통일의 꽃이 귀환하였다.
평양축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님이 그들이시다.
♬~평축의 축포 오르는 평양의 밤 흥겨워라~♬ 로 시작되는 평양축전의 공식노래가 지금도 내 기억에 또렷하다.
89년 6월 30일 전대협 대표로 임수경씨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제 3국인 독일을 통해 참가하게 되었다. 이는 시대 젊은이들의 순수한 통일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리라. 당시 정부가 전대협의 공식요청을 거절하고 참가봉쇄를 하게된 계기는 문익환목사님의 평양 방문(3월 25일~ 4월 3일)때문이었다.  불법방북의 대가로 구속돼 국가보안법에 의해 7년형의 선고 를 받은 문목사를 당시 보수세력은 환상적 통일주의자며 돈키호테식으로 몰아대는등 그를 지지하는 젊은 학생들의 파장을 우려해 더욱더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공안 정국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문익환목사님은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시고 미래를 예견하신 분이시다. 정치논리에 우선하는 관주도의 통일외에 민이 주인으로 서는 통일을 바라셨고, 더이상 미국과 열강들에게 북쪽이 고립되지 않게, 정부가 나서지 않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시고 행동하신 분이시다. 이때까지 북한에 비해 남한은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의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문목사님은 구체적인 통일의 방안까지 제시하기도 하셨다. 보다 주체적이고 순수한 접근론이었고, 북한도 이를 수용해 결국 4.2남북 공동 성명서를 이끌어 내게 된다.
문목사님에게 통일은 남과 북이 만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종교와 이념과 성(性)과 계급, 계층과 그 어떤 이유로든 갈라져 싸우느라 빼앗긴 민족의 능력과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었다. 힘있는 자들만의 기득권적 확보싸움이 아닌 한민족 모든 민초들이 주인이 되어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이었다. 당시 양식과 양심을 갖춘이들도 감히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시기에 문익환목사님이 계셨다는건 대한민국으로선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외세에 간섭받는 정부의 주체적이지 못한 통일정책에 기대하면 더디기만 할 것이라는 식견은 이후로  화해와 대립이 반복되어 나타남으로써 잘 드러나지 않았던가!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에 이르러 일관된 햇볕정책도 따지고 보면 문익환 목사님의 뜻이 담겨 있는 일맥상통하는 통일정책이고, 이 정책을 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문익환 목사님의 평전(김형수 著)을 보면, 문익환 목사님은 한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시길 좋아하지 않으셧다 한다.
우리민족의 근본은 유목민이고 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인이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목사님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자유로운 영혼, 종교와 민족의 벽을 허물고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 그리고 말씀만이 아닌 실천하시는 양심...

이시대 썩어있는 정치집단과 종교집단에 큰목소리로 꾸짖을 자격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중에서도 문목사님은 양쪽을 향해 일갈을 하실만한 민족지도자이시리라 역사가 뭐라하든 난 단언할 수 있다. 
기독교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정서적 조국을 고구려로 삼으신 문목사님은 뛰어난 감각으로 20세기 세계의 시대흐름이 변화하리란 걸 감지하신 선지자이시리라.

민족시인 윤동주의 친구이자. 역시 동료인 장준하 선생의 죽음 앞에 비로소 여린 가슴속 깊이 억눌러온 열정을 온몸으로 뿜어낸 진정한 민족지도자이신 문목사님에게 국가가 보상한 것은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죄목으로 6섯번이나 감옥에 투옥을 한 것이 전부였다. 

국가보안법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했는지 그 실랄한 분석은 다음기회에 하기로 한다.

문목사님같은 민족지도자에게 올가미를 씌워 댄 것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은 역사에 가장 악랄한 악법이었고 군부독재정권의 수호법이였음은 역사가 평가하리라.
오늘날 참여 정부에 적극적인 개혁지지자들이 문익환 목사님의 진실된 마음과 순수한 눈빛과 양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진정 통일을 원하는가? 이 질문은 7천만 겨레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이오." --- 상고이유서, 문익환
 
이 질문에 나는 어떤 답변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겠다.
내 이기적인 자유만을 찾으려 한건 아닌지...
 
------------------------------------ 자유를 갈망하는 네티즌 슈피겔
 
 
                           4.2 남북 공동 성명서

남조선의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하며 아울러 현재 침체상태에 있는 남과 북의 당국 대 당국, 국회 대 국회의 통일협상 및 민간차원의 모든 접촉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목적으로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문익환목사는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고 서로가 민족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는 열의에 넘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은 체류기간 평양봉수교회에서 거행된 뜻깊은 부활절 예배를 봄으로써 민족의 부활을 말해주는 통일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굳힐 수 있었으며 또한 장충카톨릭교회미사에 참가하여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교직자들과 담화를 나눔으로써 기독교신앙을 통한 상호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였다.
또한 그 옛날 서산대사가 기거하던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하여 그곳 스님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문화적 정신적인 공통성과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적 긍지를 지키려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문익환목사 일행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과 동포애에 넘치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에서 허담 위원장과 부위원장들인 정준기, 윤기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여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안병수가 참가하였으며 남에서는 문익환목사와 정경모가 참가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의 평양방문을 따뜻하게 환영하였으며 특히 문익환목사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오직 나라와 민족이 하나로 되는 길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평양방문의 용단을 내린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회담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조국통일의 열망이 높아가고 전반적인 국제정세도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유리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 정세에 맞게 전민족적인 통일노력을 배가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에서 무엇보다도 남과 북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스러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의 도발성과 위험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자면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실현하여 정치군사적 대결부터 해소하여야 할 것이며 조,미,한 사이의 3자회담을 열어 조,미 사이의 현 정전협정을 보다 영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아울러 남북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은 남과 북의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용인하며 자치제에 근거하여 두 지역 정부가 하나의 연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위하여 지도급 인사들의 정치협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서는 쌍방의 대화를 당국자가 독점하는 일이 없어 각계각층의 민간급 대화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한당국이 주장하는 대화창구일원화 를 배격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나라를 영구히 둘로 분열시키려는 두개 한국 조작책동과 두개 한국 을 추가하는 교차접촉 , 교차승인 , 유엔동시가입을 견결히 반대배격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현 시점에서 남북사이에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과 북의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세력이 순수한 민족적 입장에서 굳게 단결하여 나갈데 대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의 평양방문 초청과 따뜻한 환대에 사의를 표하였으며 자신의 평양방문이 북의 통일의지를 직접 확인하며 남북의 화해와 교류와 접촉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표시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나라의 분열을 더이상 끌어서는 안되며 가까운 시일안에 민족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이 일체임을 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대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문제와 함께 교류문제도 병행하여 해결해야 하며 남북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산가족문제와 경제교류문제 등 여러 부문에 걸친 회담과 교류가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대화창구의 일원화 를 반대하는 한편 민간차원의 대화가 활발히 진행됨으로써만 남북당국과 양측 국회사이의 대화도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연방제로 나아가는 것은 두 지역간의 현실적 차이와 민족통일의 절박성에 비추어 필연적인 역사의 요청임을 지적하면서 연방국가의 단계적 창설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소의와 아집을 버리고 대승적 입장에서 서로 단합함으로써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슬기와 존엄을 과시하고 통일위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쌍방은 솔직한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고 이해와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서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쌍방은 상치되는 이해와 주장을 넘어 7.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2. 쌍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열의 지속을 목적으로 하는 두개 한국 정책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쌍방은 정치군사회담을 추진시켜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동시에 이산가족문제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접촉을 실현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4.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5. 쌍방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은 남북대화와 평화 및 통일의 성취와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에는 대화가 장애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문익환목사는 올해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 북에서 취한 유연한 대화자세를 평가하였다.
6. 문익환목사는 교차승인 , 교차접촉 에 대한 북의 거부적 입장과 통일의지를 확인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가 주장하는 남북교류와 점진적 연방제 통일제안이 두개 한국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7. 쌍방은 우리 민족이 굳게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통감하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어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한 공동의 염원을 표시하였다.
8.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전민련의 범민족대회소집제안을 지지하고 문익환목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는 남한청년학생들을 지지하며 쌍방은 그 실현을 위하여 계속 인내성 있게 노력한다.
9. 쌍방은 이상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금후 남북사이의 다각적인 공식대화에서 협의의 기초가 될 수 있고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실천대책을 남북당국과 제 정당, 단체들에 건의한다.
남북인민들의 거세찬 통일열망을 바탕으로 하여 실현된 문익환목사의 이번 평양방문은 우리 나라 민족통일운동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쾌거이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뜻깊은 평양방문이 통일이냐 영구분열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우리 민족을 올바른 애국의 길로 이끄는 고무적인 힘이 될 것이며 남과 북사이에 쌓여온 불신과 반목을 해소하고 사상과 신앙,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단합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며 남북대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쌍방의 접촉과 교류의 길을 터놓는 선구적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임을 확인한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이 회담당사자들 사이에 다같이 유익하였다고 인정하면서 쌍방의 합의의 결과는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적 양심을 지닌 남과 북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1989년 4월 2일
평 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문익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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