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9:59 (토)
양창용님 께 감사드립니다
양창용님 께 감사드립니다
  • 보령시민
  • 승인 2009.03.10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양창용님께 감사드리며  좋은글 올려드립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주변이 바뀌어도 무언가 고착되어 풀릴 길이 없는 사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전한(前漢)의 원제(元帝)의 명에 따라 흉노족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왕소군(王昭君)의 심정을 대신 노래한 후대의 시(詩)중에 한 대목이다.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東方叫)는 ‘소군원(昭君怨)’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이라 하여 꽃과 풀이 없으랴마는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야위어서 옷 띠가 절로 느슨해지는 것은

  허리를 가늘게 가꾸고자함이 아니라네


  고향이 그리워 말라가는 여인에게 이국(夷國)에서의 봄은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가 않은, 더욱 야위어가는 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봄은 그립고 수척한 봄이다. 이러한 봄이 불가항력의 운명과 결부되면 봄날의 햇볕조차 속절없이 눈물겨워진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머나먼 흉노의 땅으로 보내져 생을 마쳐야했던 이 비운의 절세가인이 애석해서, 이백(李白) 또한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제(詩題)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는 한나라 수도, 장안을 떠나는 왕소군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上馬啼紅頰 (상마제홍협)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소군이 옥안장에 옷자락을 스치며
  말에 올라 붉은 뺨으로 눈물을 흘리네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지만
  내일 아침엔 오랑캐 땅의 첩이로구나

 

  이 전한(前漢)시대의 왕소군(王昭君)이 춘추시대 말엽의 월왕(越王) 구천(勾踐)에 의해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바쳐졌던 서시(西施)와, 동탁(董卓)과 여포(呂布)를 이간하기 위해 사도(司徒) 왕윤(王允)에 의해 보내졌던 후한(後漢) 헌제(獻帝)때의 초선(貂蟬)과, 그리고 당(唐)나라의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고대 중국의 4대 미녀로 불린다.

  이들의 삶은 하나 같이 전란과 살육의 시대 한 구석을 수놓고 있다. 중국인들은 어쩌자고 잔혹한 역사 한가운데에 이 가녀린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새겨 넣었던 것일까. 이들의 몸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지만 그 몸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 몸은 개별 인간의 욕망을 건너뛰어 집단 전체의 이념에 복속되는 몸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소외되고 억압된 몸이었다. 그 몸은 폭력의 질서에 제물로 바쳐져서 역사 속에서 비눗방울처럼 꺼져버렸다. 그 아리따운 몸을 차지한 역사의 강자들 또한 이들과 해로(偕老)하지 못한 채 죽거나 몰락할 운명이었다. 악착같은 탐욕과 무자비한 폭력으로 패권을 다투다 그들은 결국 멸망하였다.

  이 미녀들은 갈대와도 같았다. 세찬 바람에 몸을 뒤척였을 뿐, 따로 소리하지 않았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굴신(屈伸)을 달리하는 연약한 줄기처럼 역사의 거친 물결에 따라 그녀들은 몸을 굽혀 단지 약탈(掠奪)과 조공(朝貢)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중국인들의 심상(心像)에 새겨진 이 미녀들의 아름다움에 연민이 묻어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대를 넘나들며 강자의 욕망에 휩쓸러가야 했던 중국인들로서는 이들의 운명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슬픈 서사(敍事)를 뛰어넘을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중국인들에게 있을 수가 없다.

  미인들의 눈물 나는 서사의 근저에는 폭력적인 남성의 역사가 가로놓여있다. 그리고 그 근육질의 역사는 오랫동안 중원(中原)과 변방을 지배하여왔다. 지금도 그것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폭력과 억압의 역사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에 대한 공감은 시대를 불문한다. 고대 중국의 미인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인인 까닭이다.


  고대의 폭력을 대신하여 금력(金力)이  오늘날의 중원과 변방을  지배하고 있다. 그 출처와 근원을 따로 묻지 않은 채, 돈은 권력이 되어 세상에 군림한다. 어마어마한 군마(軍馬)의 분열과 행진이 없어도 돈은 그 권능으로 간단히 세상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 지배와 권세는 너무도 교묘해서 오늘날의 왕소군(王昭君)은 슬픔을 노래할 여지조차 없다. 그래도 여자들은 운다. 고대의 아득한 폭력이 엄습한 것이 아니라도 오늘날의 여자들 또한 자신으로부터 머나먼 곳에 보내져 저마다 옷을 벗으며 눈물을 흘린다. 최근의 불황이 이 여성들을 더욱 슬프게 만든다. 왕소군(王昭君)은 고대 중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보다. 그래서 봄을 앞둔 오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봄은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