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만 최고보다 최선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최고(最高)와 최선(最善) 은 다르다.
최고는
타인을 향하지만,
최선은
언제나 자신이 기준이다.
최고는
타인을 이겨야 얻을수 있다.
최고는
최선과는 달리 한 명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고, 대다수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든다.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즐비한 것은 삶의 목표를 최고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가 결과를 중시한다면
최선은 과정을
중히 여긴다.
최선은 내가 얼마나 고난을 이겨냈고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관건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수 있고,
최선을 다해도 꼴찌를 할수도 있다.
소설가 박완서 (朴婉緖, 1931 ~ 2011) 의 글 중에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이 있다
화창한 어느 날,
박완서 작가가 탄 버스가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로 교통이 통제된 까닭이다.
작가는 구경을 하기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선두권 주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지나갔다.
이들이 오래 전에 지나간 뒤에 포기지 않고 달리는 꼴지 주자들을 보면서 작가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작가는 그때의 묘한 감정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
옜다,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어떡하든 그가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그렇게) 느끼기만 하면그는 당장 주저않게 돼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답다.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인생에서 누구나
최고가 될 순 없지만, 누구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최고보다는 최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