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73호(1989.12.29.)로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50 (청소면 김좌진로 200) 번지내 조성된 김좌진 장군 묘소 입구에 “김좌진장군묘 묘비석”이란 충청남도와 보령시에서 문화재내 묘비 글쓴이의 친일행적과 관련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자 이 안내문을 작성했음을 알리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어 학계와 문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백야 김좌진 장군 묘소 앞 묘비 “대한독립군총사령관 백야김좌진장군묘”의 시민단체와 학계의논란이 된 비문 내용을 친일문학가로 이름을 떨친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1903~1985)이 쓴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 독립애국지사의 비문을 대표적 친일문학인이 정리해 소개한 셈이다.
보령시에서는 매년 10월 22일,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의 청산리전투 승전 기념일을 맞아 묘역이 있는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장군의 묘역에서 보령문화원 주관 추모제향 행사가 열리며 이 때마다 그동안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왔다.
팔봉 김기진은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만들었으나, 1940년 무렵부터 수필·시·시조·평론 등 친일작품을 발표했다. 1944년 조선문인부국회 상무이사 겸 평론수필부 회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이사에 선출되는 등 친일 문예조직의 중추적 인사로 활동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묘소는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있었다. 하지만 1957년 장군의 부인(오숙근 여사)이 타계하면서 현재 장소로 합장·이장했다. 바로 이때, 팔봉 김기진이 장군의 생애를 소개하는 비문을 작문했다.
비문 앞면에는 "대한독립군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이라고 썼고, 뒷면에는 약 300여 자 남짓(세로 7행)으로 장군의 생애를 정리했다. 묘비에는 팔봉 김기진이 글을 썼다는 사실도 새겨져 있다.
한편, 제보한 김모씨는 "묘비를 새길 당시에는 김기진의 친일행각이 드러나지 않아 관계자들이 신경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좌진 장군의 묘소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돼 있고 보령시에서 1974년부터 장군묘역 성역화사업을 추진했으며 청산리대첩일 시기인 10월 22일에 매년 보령문화원 주관 추모 제향 행사가 열리고 있다.
독립운동한 사람들 못살고
눈치껏 살아도 마냥 그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