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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당(集成堂), ‘창건 121주기 기해년 석채례(釋菜禮)’ 성료
집성당(集成堂), ‘창건 121주기 기해년 석채례(釋菜禮)’ 성료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19.09.17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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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 유림중심, 유적을 보존하고, 유지발전에 정성 기울여!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에 소재하고 있는 집성당(集成堂) 창건 121주기 기해년 석채례(釋菜禮)가 오현규 도유사, 김완집 사무국장의 주관으로 남포향교 황장연 전교를 비롯한 유림과 백영창 웅천읍장, 이영우 도의원, 김충호. 김홍기 시의원, 임명검 보령문화원이사, 임인식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장과 지역주민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 개최됐다.

정통 성균관 제례 의식따라 김완집 사무국장의 집례로 초헌관에 백영창 웅천읍장 , 아헌관에 오치정 전 남포향교 전교, 종헌관에 황장연 남포향교 전교가 맡아 엄숙하게 진행됐다.

오현규 도유사는 인사말에서 “특히 금년은 집성당 창건자이신 삼희당(三希堂) 윤석봉(尹錫鳳)선생의 독립운동의 유공이 국가로부터 인정되어 제74주년 광복절 정부포상자 명단(178명)에 올라 건국포장을 받으신 경사스럽고 정말 자랑스럽다”. 말했다.

보령의 집성당 처럼 문화유산은 우리 계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고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이다. 문화재는 모두 민족 문화의 정수이며 자산이고 그 기반이라 하지만 유독 역사적 가치에 비해 이처럼 등한시 되어 있는 보령의 집성당(集成堂)은 3.1운동 100주년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무관심속에 오직 몇몇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보령의 전체성 확보와 웅천읍의 생명감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집성당은 보령 독립운동의 산실이며 구심점으로 유일한 보령의 강학기관으로 존재했던 집성당은 현재 보령시 향토문화유적 2호로 1991년 등록 되었으며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 산 14번지에 자리 하고 있다.

연혁으로는 1898년3월 화서학파 삼희당 윤석봉 선생의 주도하에 옛 남포현을 중심으로 보령, 서천, 홍성, 청양, 부여등 인근 지역유림들에게 통문(通文)을 발하여 350여명이 참가(동참록(同參錄 참조)하여 주자의 영정과 우암송시열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기리고자 제례를 갖추기 위한 사당으로 시작 되었다.

1905년8월 남포군수 이석재(李錫宰)는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개축도 하였고, 당직1명 과 유사1명, 공납[호포와 환곡]과 잡세[도정과 무명잡세]등을 일체면탈(세금면제) 한다는 완문책자(完文冊子:이조때 관아에서 부동산 따위의 처분에 관해 발급하던 증명서) 를 발급하였다.

또한 후학들을 강학(講學)하기위한 수칸의 한화당(寒華堂)을 건립하였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항일위정척사 사상을 강론 하였다.

1906년 민종식이 주도한 홍주의병에도 이곳출신 문도들이 많이 참가하였다.

1910년 11월 집성당 창건자 윤석봉은 홍주의거에 참여했다 피체되어 투옥으로 인한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케 되었는데, 일제 강점기때는 민적부(호적부)에도 신고를 기피하여 무적자(無籍者)로 일생을 마쳤다,

1919년에는 집성당 배출인물중 옥재 백관형이 파리장서운동에 김지정과 참여 서명하였다. 특히 백관형은 1916년 만동묘에서 항일연설로 3개월간 옥고도 치렀고, 3.1운동에도 참여는 물론, 조선독립 애원서 작성서명 등등으로 피체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수형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아울러 1926(병인)년 8월에는 돈암이응복이 집성당 유지보수를 위한 속수계를 결성하여 석채례 제수나 기타 집성당 유지보수에 힘썼으며 1929(기사)년 2월 이교헌의 2차중수기가 있고 1957(창건후재정유)년 9월 임성순의 3차중수기가 있으며1991(신미)년12월10일 보령시향토유적 제2호(313-83-0612)로 지정됐다.

이후 집성당은 부동산등기등록번호=>3438-00612를 취득후 1993(공부자탄강2544계유)년 오재섭의 중수(4차)기에 의하면 김학현군수가 주축이 되어, 중수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전한다.

그리하여 집성당은 단순한 주자, 송자를 모시고 제사만을 지내는 사우(祠宇)가 아니고, 항일의 병의 사상을 가진 보령 서천 홍성 청양 등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활동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역의 유일한 정신적 지주역활을 한 곳으로 평가 할만 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윤석봉, 백관진, 유준근, 김복한, 유호근, 조구원, 신응선등 항일 유림들이 서로 교류하며 항일 의지를 심화(深化)하였던 곳으로서, 현재는 매년 1회 음력으로 2월중정일에 석채례(釋菜禮)을 올리며 옛 선열들의 숭고한 덕을 기리는곳으로서, 오늘날 후손들이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宣揚)하는 장소로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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