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원, “역사왜곡” 굴레에서 벗어나자!
보령문화원, “역사왜곡” 굴레에서 벗어나자!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19.02.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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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제 선생 가치 ‘TV진품명품’에 ‘대동보(大同報)’방영으로 위대함 드러나.

3.1운동 100주년의 기념을 앞두고 천안의 류관순, 예산의 윤봉길, 홍성의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서천의 월남 이상재, 청양의 면암 최익현, 보령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석람 김광제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보령시 동대동 사거리에는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하여 조성된 김광제 동상공원이 있으며 독립지사 동양자 김광제 선생 동상이 있다.

보령인 석람 김광제 선생이 다시 언론의 독립운동사에 주역이 되고 중심인물로 혜성처럼 떠오르고 있다.

<대구 국채보상운동 공원 독립지사 김광제. 사상돈 흉상>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29일 대구에서 처음 시작되어 보령사람 김광제, 대구사람 서상돈 등 17명이 발기한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외채 1천300만원을 상환해 주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3개월 여간 4만 여명이 참여했고 모은 돈은 230만원에 달했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연간 예산이 2천 300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큰 성과를 거뒀음을 알 수 있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의 탄압으로 별다른 진전 없이 좌절됐다.

조선식민지화에 나섰던 일본은 1904년 고문정치 이래 조선경제 파탄을 목적으로 차관을 도입하게 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세출부족액이 77만 여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거액의 외채상환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일본은 이 점을 노려 조선의 각종 이권을 침탈하고 경제권을 장악했다.

김광제, 서상돈 등은 국채보상운동 국민대회 개최, 국채지원금 수합사무소 설치 등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채보상운동은 2017년 10월 기록물이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1월 27일(일) KBS1TV 1158회 TV쇼 진품명품에 김광제 발행 대동보(大同報) 가 소개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동보(大同報)’는 1907년 5월 1일 창간된 것으로 발행인은 김광제(金光濟)이며, 발간목적으로 인민의 임무, 교육의 실제, 식산흥업, 사회효과, 세계 기문(奇聞)의 요점을 수집하여 국민의 지식을 더욱 더 증진하게 하며, 또 국채보상의연금 총산(總算)과 씨명(氏名)을 빠짐없이 게재하는 것을 내세웠으며 1908년 1월 25일 통권 6호로서 종간되었다.

한편 대동보의 최종 감정가는 3,500만원으로 책정되고 석람 김광제 선생의 행적이 뚜렷이 알려지고 보령의 역사적 의미가 알려지자 그동안 보령문화원을 중심으로 보령 5열사를 비롯하여 보령의 역사왜곡 등 많은 논란에서 벗어나 보령시민의 마음을 다시모아 국채보상운동의 가치와 아울러 파리장서운동 등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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