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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독립운동가 ‘옥재(玉齋) 백관형 선생 고문서’ 다량 발견 화제
보령의 독립운동가 ‘옥재(玉齋) 백관형 선생 고문서’ 다량 발견 화제
  • 임인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19.01.0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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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형(白觀亨)선생의 친필등 향토자료 가치로는 문화재급 수준

3.1운동 & 임시정부 수립100주년을 맞아 보령출신 독립운동가 옥재 백관형(玉齋 白觀亨) 선생의 [옥재유고(玉齋遺稿)] 초고본 7책과 大字 墨書 [대자 묵서 옥재(玉齋)] 1점 등 지방문화재급 향토자료가 일괄 양호한 상태로 고문서가 무더기로 발견 공개되어 지역 향토사학계에 커다란 감동을 앉기며 화제가 낳고 있다.

이 고문서는 미완의 문집 초고본 상태로 표지가 장정된 [옥재유고(玉齋遺稿)] 시(詩) 1책, 제문, 묘지명(祭文, 墓碣銘 )1책등 과 표지가 없는 [옥재유고(玉齋遺稿)] 설(說), 통문(通文) 1책, 전(傳), 행장(行狀) 1책, 서(書) 1책등 3책 과 표지가 없는 [남포백씨사행실록(藍浦白氏事行實錄)] 1책, 표지가 없는 [서남포백씨계지록후(書藍浦白氏繼志錄後)] 1책, 표지가 없는 [의사백공형제 형 완 설단통문(義士白公兄第 珩 玩 設壇通文)] 1책, 대자 묵서(大字 墨書) [옥재(玉齋)] 1점등 학문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로 보령의 율재 김관제 선생, 삼희당 윤석봉 선생과 함께 구한말 보령의 유일한 강학기관 집성당(集成堂)등 성씨 연구에도 탄력이 붙을 예정이다.

한편 그동안 옥재 백관형 선생의 서간문등 과 시문등은 관리 소홀로 분실되어 독립운동 사료연구에도 자료가 미진 하였으나 금번 보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데 큰 의미가 갖게 됐다.

고문서를 발견한 임인식(56)씨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장은 그동안 보령의 역사자료를 수집하던중 대전의 고문서 수집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거금을 주고 입수하여 공개를 하게 되었으며

“아직 전문가의 감정을 받지 않은 상태지만 보령시 역사인물로 독립운동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면 조상의 애국심을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문집을 정리하여 번역 출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향석) 전홍규 교수는 “문집의 형태나 보관상태등 보령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사료가 될 것 이라고 옥재유고의 가치를 높이 평가 하였으며 연관된 관련 사료가 더 많이 발굴되어 보령시 차원의 정체성을 확보 하는데 큰 동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묻혀진 보령지방의 화서학파와 유림 연구에도 시대적 배경으로 가치가 높으며 남포백씨 관련 기록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상당히 있고, 보령시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보물급이 드러나 너무 기쁘다.” 전했다.

백관형(白觀亨) 선생

1861년 2월 12일~1929년 9월 19일.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자는 경국(景國)이고, 호는 옥재(玉齋)이다. 본관은 남포(藍浦)이고, 본적과 출신지는 충청남도 보령이다.

고려의 성리학자 백이정(白頤正)의 후예이다. 부친은 백사량이다.

어려서는 존양당(存養堂) 백윤수(白潤洙)‧의암 류인석‧최익현‧윤석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乙巳條約)에 반대하여 각도 유생들과 궐기하였고, 1906년(광무 10) 유준근과 함께 홍주의병 참모로 활약하였다.

1916년에는 만동묘(萬東廟)에서 항일연설을 하다가 붙잡혀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일본 경찰에 구류되었다.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유림대표 137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한편, 문일평(文一平) 등과 더불어 조선독립 애원서(哀願書)를 작성하여 12명의 동지들과 함께 서명한 뒤 총독에게 발송하고, 운집한 대중들 앞에서 낭독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옥고를 치른 후 고향에 돌아와 스승 윤석봉이 창건한 집성당에서 유준근‧김복한‧문석환 이식 등 항일유림들과 교유하면서 항일의지를 심화시켜 나갔다.

보령지역의 대표적 화서학파 중 한사람으로서 항일에 투신한 유림으로 거론되고 있다. 서간문 100여 장과 시문(詩文) 10여 권이 전한다.

묘는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예전산에 있다.

제자 박성철이 지은 묘비가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8월에 건국공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자료제공 : 보령시)

(향석) 전홍규 교수
(향석) 전홍규 교수 .임인식(56)씨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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