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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그 이면에는....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그 이면에는....
  • 양창용
  • 승인 2018.07.2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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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교수, 충남대학교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
(김영모 교수, 충남대학교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

2018년 7월 15일 오후 5시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는 비행기 한대가 소방차가 쏘아올린 물대포의 이색적인 환영을 받으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고 있었다. 잠시 후 조종석 창밖으로 대형 삼색기가 펄럭였다. 활주로엔 빨간 양탄자가 깔려 있고 양쪽으로 공항관계자들이 도열해있어 마치 국빈의 방문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여인이 비행기 트랩에 올라서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행기 문이 열리면서 파랑색 유니폼을 입은 한 남자가 황금 컵을 두 손에 움켜쥐고 트랩으로 나왔다. 다름 아닌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룔리스였다. 이들을 영접한 여인은 프랑스 체육부장관 프레쎌이었다. 그 곁에서는 2018년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데샹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온 시민들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화답했다. 프랑스의 영웅들 <레 블뢰(Les Bleus)>(‘파랑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프랑스 대표팀의 애칭)의 귀국신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3명의 영웅들은 공항을 빠져나와 환영식이 열리는 샹젤리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프랑스 국가대표팀 <레 블뢰>를 상징하듯 버스 또한 파랑색으로 칠해졌고 <세계 챔피언>이란 커다란 문구가 버스 외관을 장식하고 정면과 후면에는 1998년에 이어 두 번째로 황금 우승컵을 가져왔음을 상징하는 하얀 별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영웅들을 태운 버스가 드골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는 40여분 동안 시민들은 이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던 일손을 멈춘 채 길가로 몰려나와 이들을 향해 환호했다.

달리는 버스 맨 뒤에는 이번 월드컵 우승의 주역 그리즈만이 황금 우승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길가의 시민들을 향해 연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수십 대의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영웅들을 태운 버스는 샹젤리제를 향해 달렸다. 반대편 차선에선 운행하던 모든 차량이 멈춰선 채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영웅들을 환영했고 선수단을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은 육교를 가득 메웠다.

마침내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다. 개선문에서 클레망소 거리까지 1.7km에 이르는 샹젤리제 거리에는 아침부터 프랑스 영웅들의 금의환향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저기에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이예즈>가 합창되고 <메르씨, 레 블뢰>(선수 여러분, 고마워요) 등의 응원가가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1998년 그러니까 꼭 20년 전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한 선수들이 귀국했을 때도 이곳에서 환영행사가 열렸었다. 하지만 그 규모나 열기 면에서 이번의 두 번째 우승은 그 때와는 사뭇 달랐다. 20년 전인 5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제1회 월드컵 우승 축하현장인 이곳에 왔었다는 한 여인은 자신이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이 역사적 현장에 다시 서게 됐다며 ‘우리가 이겼어요, 프랑스 만세’를 연신 외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별 두 개가 새겨진 하얀 티셔츠로 바꿔 입은 영웅들이 무개버스에 올라타자 마침내 거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영웅들은 일제히 황금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또 하늘 높이 치켜들면서 환영 나온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샹젤리제 거리 여기저기에서 삼색 연무가 피어오르고 응원가가 울려 퍼지면서 거리는 순간 하나의 거대한 축제무대로 바뀌었다. 버스위에 올라탄 영웅들은 모두가 연극배우였고 참가한 국민들은 관중이었다. 배우와 관중이 하나가 된 흥겨운 국민축제는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개선문 위에 나타난 프랑스 공군 비행편대가 샹젤리제 하늘에 삼색(파랑, 하양, 빨강) 연기를 수놓으며 영웅들의 금의환향을 축하하면서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

신나는 축제 한마당을 마친 영웅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엘리제 대통령 궁으로 향했다. 대통령 궁 정원에는 대통령의 초청으로 전국에서 올라온 1천여 명의 유소년 축구 선수들과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팀 주장 룔리스를 시작으로 데샹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이 하나 둘 대통령궁으로 들어오자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마크롱 대통령과 영부인은 영웅들을 일일이 포옹하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예를 다하는 영웅들과 격식없이 이들을 맞이하는 대통령과 영부인의 모습은 또 다른 프랑스의 에스프리였다.

영웅들이 자리를 잡자 마이크를 잡은 마크롱 대통령은 에워싼 관중들을 향해 “우승컵을 갖다 주고 프랑스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또한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켜주어 고맙다”며 영웅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기니 출신의 포그바 선수가 마이크를 잡고 <오 나 뚜 까쎄(On a tous cassé>(우리가 모두를 이겼어요)>란 응원가를 선창하자 마크롱 대통령, 데샹 감독, 선수들이 일제히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우었다. 초청받은 유소년 선수들은 영웅들과 함께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미래의 월드컵 영웅을 꿈꿨다. 그렇게 대통령과 영웅들과 관객들은 또 다시 하나가 되어 엘리제 궁 정원에서 또 다른 축제 한마당을 펼쳤다.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크롱 대통령조차도 “오늘의 영웅 중의 영웅, 우리들의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던 데샹 감독은 끝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이끈 대표팀의 주장이자 이번의 월드컵 우승으로 월드컵 역사상 세 번째로 선수가 감독을 맡아 우승컵을 거머쥔 명장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당연히 오늘 같이 기쁜 날 데샹 감독도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는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였고 그는 행사 내내 한 발 뒤로 물러나 때론 박수치면서 때론 영웅들을 토닥이면서 분위기를 띄울 뿐이었다.

데샹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간판스타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벤제마를 대표팀 명단에서 빼고 젊고 개인기 넘치는 다양한 인종의 젊은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23명의 국가대표 중 15명의 아프리카계 선발 이것은 파격이었고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데샹 감독은 개인의 자율성 속에서 팀의 활력과 통합을 추구했다. 그래서 인종과 이념을 뛰어넘는 공화국의 정신을 팀의 구성에 적용했다. 그의 용병술은 이번 월드컵에서 그대로 빛났다. 참가팀 중 가장 어린 선수로 팀을 꾸렸고 펠레 이후 10대의 월드컵 영웅 엠바페를 발굴하여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2018년도 월드컵 우승 잔치는 끝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무한한 행복을 선사한 23명의 영웅들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국가는 조국 프랑스를 빛낸 영웅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이 영웅들과 월드컵 2회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 지하철 이름도 <오 나 되 제뚜왈(On a 2 étoiles)>(우리는 별 두 개를 갖게 됐어요)로 이름 짓고 데샹 감독의 이름을 따 <데샹 엘리제 클레망소>로 명명했다.

2018년 7월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테러, 실업문제 등으로 프랑스 국민들이 안고 있던 불안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국민 대통합을 이룩한 역사적 사건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이 기억의 한 편에는 선수 선발에서부터 오늘의 환영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던 데샹 감독이 각인될 것이다.

갑질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즈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보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명감독 데샹의 모습이 오늘 따라 가슴에 절절이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샹 감독 그는 월드컵 우승의 진정한 프랑스 영웅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또 다른 본보기였다.

(김영모 교수, 충남대학교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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