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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보령문화원 발전을 위한 제언
[독자기고]보령문화원 발전을 위한 제언
  • 양창용
  • 승인 2018.01.1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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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문화원을 냉철한 시선으로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영모(보령문화원 회원)
김영모(보령문화원 회원)

요즘 보령문화원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있다.
보령문화원이 이처럼 여론의 대상이 된 것이 단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들어 특히 세인의 관심이 주목되는 이유는 문화원장이 유고이고 머지않아 치러질 선거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보령문화원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돼왔으나 간추리면 다음 두 가지로 크게 요약된다.

하나는 소수의 회원들이 문화원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령문화원에서 진행중인 강좌명과 강사이름을 거론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보령문화원 운영이 편향되어 중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견은 많은 곳에서 이미 논의가 된 것이기에 두 번째 의견에 대한 사족으로 이 글을 시작할까 한다. 물론 문화원 운영의 편향은 첫 번째 사안의 연장선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필자는 보령문화원의 소극적인 회원이었다. 말하자면 매년 회비를 내지만 회원으로서의 활동, 즉 회의에 참가하거나 문화원 활동에 참여한 적이 별로 없다. 물론 초기엔 나름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매년 문화원에서 보내오는 소식지나 애향지를 받아보는 단순회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보령문화원에 관해 들려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큰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무엇인가 한 마디는 해야겠다는 그래서 보령문화원의 발전에 조그만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으로 그동안 느껴온 보령문화원에 대한 소회를 이 자리를 빌어 밝혀보고자 한다.

문화는 그 사회의 정신적, 사상적 행동양식이다. 특히 지역문화는 그 지역 고유의 특성이 내재되어 지역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올바른 사고가 필수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다루는 사람의 행동양식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야하고 만인의 모범이 돼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원과 문화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보다 높은 식견과 고매한 인격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보령문화원은 초대 원장부터 근래의 원장에 이르기까지 보령의 문화창달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 결과는 그동안 보령문화원에서 추진해왔거나 이룩해 놓은 사업이 이를 잘 말해준다. 양적인 면에서 보령문화원은 전국의 그 어떤 문화원에 비해 초과목표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양보다는 질적인 문제에 더 눈을 돌리고 보령문화원을 냉철한 시선으로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보령문화원은 매년 초 신년하례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강좌, 번역 및 출간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해오고 있다. 그 결과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전국의 그 어떤 문화원과 견줄 수 없는 양적 업적을 쌓았다. 그동안 보령문화원에서 추진해온 사업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보령의 금석문』(2010), 『보령의 홀기』(2013), 『(국역) 보령의 한시』(2015), 『보령의 인물』(2015)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역) 신안현지』에 이르기까지 보령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커다란 업적을 이루었다. 이처럼 많은 결과가 따른 것은 원장 이하 이 사업에 참여한 회원들의 노고와 보령시의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역대 원장을 비롯하여 사업에 참여하여 성과를 낸 모든 분들께 먼저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처럼 그동안 보령문화원이 추진해온 야심찬 사업의 선정과 절차 등이 사업목적에 부합하고 과연 그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왔는지 되물어야할 때이다. 왜냐하면 문화원 사업을 독식한다는 등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회자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최근에 출간된 『(국역) 신안현지』의 번역과정을 통하여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신안읍지』의 번역을 추진해왔기에 이번에 출간된 『(국역) 신안현지』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었다. 그래서 『(국역) 신안현지』가 번역돼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해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해제는 빠져있었다. 해제 대신에 어김없이 ‘발간사’, ‘축사’가 그 몫을 대신하였다.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신안읍지』가 어떤 책이고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내용과 중요성은 무엇인지(『신안읍지』에 관해서는 졸저 『김성우 평전』(궁미디어(2017)을 참조) 독자들을 위한 배려는 이 책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지난 시간 『신안읍지』와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필자가 『신안읍지』를 처음 접한 것은 대천문화원(당시는 대천문화원이었고, ‘보령문화원’으로의 명칭변경을 건의도 했었으나 전통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에서 간행된 애향지의 영인본이다. 이후 2009년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신안읍지』를 다시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신안읍지』는 현재의 『보령시지』의 원조로 보령의 역사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신안읍지』는 타 읍지와는 달리 인물조가 방대하고, 사료로서 가치가 인정되어 학술발표 자료로 이용되었다. 그 이후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신안읍지』 필사본이 미국 하버드 엔칭도서관에 소장돼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인본을 구해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전시회에 들렀던 모시장이 『신안읍지』에 관심을 보였고, 이 자리에서 필자는 『신안읍지』의 학술적 가치를 설명했다, 이에 모시장은 "이런 소중한 자료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느냐"며 번역을 약속했다. 그래서 학계의 전문가에게 번역을 의뢰해 번역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인본이 진본이 아니라며 번역이 거부되었고 끝내 번역이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보령문화원에서 문제의 『신안읍지』가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놀란 것은 이 책의 번역과정이다. 그동안 가짜라고 말해지던 『신안읍지』가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 번역이 진행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하나는 왜 지금까지 『신안읍지』가 보령문화원을 비롯한 보령사회에서 외면돼 왔는가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보령에는 보령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물론 문화원 회원을 포함한) 단체가 있다(모 단체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26회의 회집 발간, 『보령시지』를 비롯한 20여 가지의 향토지 집필과 향토사교육을 주도했다고 한다). 따라서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보령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왔고 이에 대한 논문이 매년 발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안읍지』에 대한 연구나 논문은 전무한 실정이다. 왜 그럴까? 『신안읍지』가 가짜여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신안읍지』의 존재를 몰라서 그랬을까? 이것도 아니면 『신안읍지』의 학술적 가치가 없어서인가? 이처럼 보령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신안읍지』는 그동안 보령시와 보령문화원을 비롯한 보령시민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해왔다. 따라서 금번에 보령문화원에서 『신안읍지』가 번역돼 출간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의 번역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필자는 이 책이 번역되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보령문화원을 직접 찾아가 원장을 만났었다. 그랬더니 원장은 “오늘은 선약이 있어 지금 나가야된다”면서 “번역이 진행되는 것은 맞고, 필사본은 집에 있어 나중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해 5월 다시 문화원을 찾아갔더니 번역과정을 설명하였다. “아는 교수가 있는데 보령의 중요한 읍지라면서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해서 번역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물었다. “그 교수님이 누군지 알 수 없느냐”고. 그랬더니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번역중인 『신안읍지』 필사본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필사본은 바로 내가 번역을 시도했던 예전에 전시한 하버드 엔칭도서관 영인본이었다.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물었다. “그럼 누가 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느냐?” 그런데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 순간 “참 이 문화원은 비밀도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원장님, 보령문화원에서 지금까지 많은 사업을 해오셨습니다. 그 어떤 문화원에 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지금까지 간행해온 책마다 해제가 없어 자료집에 불과한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진행중인 『신안읍지』 번역만큼은 꼭 전문가에게 의뢰해 해제를 달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원장은 필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해 “번역만하면 되지 뭐 그런 것 까지 필요한가요?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라고 말을 잘랐다. 그래서 다시 “이번만큼은 꼭 부탁드립니다. 제가 전문가를 찾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은사님한테 보령문화원에서 진행중인 『신안읍지』 번역 건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 은사님도 나처럼 걱정하셨고, 우리는 날을 잡아 원장을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은사님 또한 “누가 번역을 하건 해제는 꼭 필요하다. 한번 책이 나오면 그 책을 다시 손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필요하면 ”나라도 돕겠다"며 다시한번 신신당부하고 문화원을 빠져나왔다.

이것이 필자가 아는 『신안읍지』 번역사의 전부이다. 그동안 가짜라며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던 『신안읍지』가 어느 날 갑자기 문화원사업으로 지정돼 누가 번역을 하는지 조차 비밀에 부쳐진 상태에서 번역이 돼 마침내 출간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단지 『신안읍지』만의 문제일까? 이의 이해를 위해서 보령문화원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평가되는 『보령의 금석문』(728쪽)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책은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탑비>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수리조합창설기념비>에 이르기까지 보령의 금석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 책을 위해 필자들이 발품을 팔아 답사하고 사진을 찍고 탁본한 후 자료를 정리하고 또 다시 번역하는 등의 출간과정에서 들인 노고를 높이 평가한다. 『보령의 지명』 이상의 노고가 배인 보령문화원의 또 다른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위에서 지적한 동일한 문제가 또 다시 발견된다. 첫째 이 책 또한 전문가의 해제가 없다. 이처럼 중요한 책을 편간하면서 금석문이 무엇이고 보령금석문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보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역사편찬의 기본원칙인 시대 순이 아닌 사전류의 편집이다. 따라서 금석문의 특징을 고려하여 건립순서, 신도비, 묘갈, 묘표, 공덕비 등 의 순서로 편집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가다나 순으로 편집되어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이러한 편집이 현대의 독자를 위한 배려라고 항변하겠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논리가 타당하다면 역사편찬도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가 아닌 가나다순으로 <고려, 근대, 삼국시대, 조선, 현대>의 순으로 편집해야하는가?『보령의 한시』, 『보령의 인물』또한 대동소이하다.

프랑스의 문호 쎙텍쥐뻬리의 『어린왕자』가 있다. 잘 알다시피 『어린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프랑스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있고, 우리나라에만도 수십 종의 번역본이 있다. 그럼에도 『어린왕자』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라쁠레이야드 총서에 실린 『어린왕자』를 가장 훌륭한 판본으로 친다. 왜 그럴까? 이것은 이 출판사의 어린왕자 해제가 가장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덧붙인 필자의 견해가 보령문화원을 되돌아보고 향후 발전방향이 무엇인지 재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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